지난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이 프로이트이다. 지금도 프로이트가 살아있는가? 라는 은유적 질문에 그가 살아있다고 대답한다. 개인의 삶은 유한하지만 남긴 사상이나 예술은 무한하다. 개인의 사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지금까지 서구 역사에서 엄청난 사건 중의 하나는 1859년 다윈 종의 기원을 통해 인간이 신에 의한 창조적 존재가 아니라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진화되어 온 생물학적 존재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19세기 후반에 탄생한 이론이 프로이트의 전신 분석 이론이다. 지금도 인간은 신의 창조물인가 아니면 진화되어 온 생물학적 존재인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프로이트가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로 보고 본능이론을 바탕으로 정신분석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프로이트가 창조해서 강조한 주요 개념인 무의식, 전이, 꿈의 해석 등의 개념을 토대로 그의 이론을 이성론적 및 형이상학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이성론적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그가 창조한 정신분석 이론이 갖고 있는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의 이유는 프로이트가 놀랄 만하고 정교하게 인간을 보는 매우 대립하는 관점인 다윈의 진화론과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결합해서 그의 이론을 개발하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당신이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당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행동을 한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의식의 영역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당신이 모르는 무의식의 영역이 훨씬 더 당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간 이해의 확장을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두드러진 사건 중의 하나가 무의식의 발견이다. 정신분석은 우리의 삶에 의식보다 무의식이 훨씬 영향을 준다는 입장을 체계화한 이론이다. 정신분석은 우리의 삶에 의식보다 무의식이 훨씬 영향을 준다는 입장을 체계화한 이론이다. 정신의학에서 심리치료하고 혀만 보통 정신분석을 의미한다. 정신분석이 직접 간접적으로 대부분의 상담이나 심리치료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지난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로서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힌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든다면 프로이트라고 말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개발한 정신분석은 여전히 인간을 이해하는 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신분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의식 영역보다 억압해서 쉽게 의식화할 수 없는 무의식 영역을 보다 강조한다는 점에서 심층심리학이라 불린다. 또한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과 현실 세계와의 마찰에서 비롯된 불안을 처리하면서 겪는 인간의 갈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갈등 심리학이라고도 한다.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보다 진전된 이론이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심리학 이론이 태동하였다. 이 장에서는 프로이트의 생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보는 인간관, 주요 개념, 상담 목표, 상담 과정, 상담 기법을 살펴보겠다.
1. 프로이트의 생애
프로이트는 1856년 모라 비아 프라이 베르크에서 태어났다. 프로이트가 네 살 때인 1860년 그의 가족은 모라비아에서 빈으로 이주하였으며 프로이트는 빈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프로이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가족, 특히 어머니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는 17세에 김나지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의학 및 과학적 연구를 위해 빈 대학에 입학하였다. 의학 외에 생물학, 생리학, 교육 등에 대한 다양한 관심 때문에 그는 대학에서 8년을 보내게 되었다. 마침내 프로이트는 의사 자격시험을 치르고, 1881년에 임상 신경학자로서 개업하였다. 프로이트는 사랑에 빠졌던 베르내이스와 약혼한 지 4년이나 지난 1886년에 결혼하였다.
프로이트는 1884년에 브로이어와 관계를 맺으면서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로부터 히스테리적 신경증을 위한 담화 치료와 최면의 사용에 대해 배웠다. 1885년 프로이트는 프랑스에 가서 샤르코와 함께 최면을 연구하며 4개월 반을 보내면서 샤르코에게서 환자들의 문제가 성적 근거를 갖는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신경증이 성적 근거를 갖는다는 아이디어를 마음속에 간직하다가, 1890년대 중반에서야 프로이트는 신경증을 지배하는 문제가 부적절한 성적 발달이라고 확신하였다.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는 1895년에 공동연구로서 흔히 정신분석의 시작으로 지적되는 신경증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프로이트는 1897년 자기분석에 착수하였으며 자신의 신경증 문제를 불안 신경증으로 진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성적 긴장의 누적으로 기인한다고 주장하였다. 프로이트가 사용한 자기분석의 방법은 꿈 분석이었다. 꿈 분석은 약 2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그러한 결과가 누적되어 그의 주요 저서인 꿈의 해석으로 1900년에 발표되었다.
프로이트는 1902년 정신분석의 이론과 실제를 향상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 무렵에 아들러를 포함한 소집단이 프로이트의 집에서 열린 주말 토의 집단에 참여하였다.
신경증의 문제에 대한 이러한 초기 논의는 심층심리학의 네 주역이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 아들러, 랭크, 융의 다른 이론적 신념과 응용 기법의 발달에 중요하게 이바지했다. 프로이트는 1905년에 성 이론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를 발표하였고 1909년에는 홀에 의해 미국에 초빙되어 클라크 대학에서 강연한 후 그의 명성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들러, 융, 랭크가 각각 자신의 이론과 스타일을 발달시킴으로써 초기 정신분석 집단은 갈등과 반목으로 붕괴했다. 아들러는 1911년 융은 1914년에 정신분석 집단에서 이탈하였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명성은 1919년부터 그가 죽은 해인 1939년까지 최고조에 달했다. 1920년대에 프로이트는 인간의 동기에 근거한 성격 이론과 체계를 발달시켰으며 이러한 이론의 영향력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치료 기법 이상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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